프로타라스에서 인터서브 생태행동(INCA), 여름 파트너
키프로스로 사역지를 이동하고 입국한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키프로스의 여러 해변 중에서도 예쁘기로 손꼽히는 프로타라스Protaras 해변에 다녀왔다. 섬나라에 왔지만 정착하느라 바다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터라 우리 가족 모두 신이 났다. 지중해는 어떻게 생겼을까? 바다에 가까워 질수록 마치 제주도 같은 느낌이 났다. 드디어 도착! 에메랄드 빛 바다가 눈이 부셨다. 한국에서 이런 바다 색깔을 본 적이 없다. 영롱하고 신비했다. 파도는 잔잔했다. 해변의 모래가 곱고 깨끗했다. 아이들이 한참동안 백사장에서 모래놀이를 했다. 아직 시즌이 오지 않았지만 일광욕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착장에 올라가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더니 물속이 훤히 보였다. 물이 참 맑았다. 이래서 지중해, 지중해 하는구나. 프로타라스는 모래 해변Sand beach이이지만 주변에 바위나 절벽 해수욕장도 많다. 그런 곳에서는 바위 사이 사이에서 물로 뛰어들며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물은 맑은데 물속에 수초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개도 없었다. 그 흔한 따개비 하나 바위에 붙어 있지 않았다. 약간의 물이끼만 끼어 있을 뿐이었다. 물빛은 환상적이었지만 정작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한국에서 우리 가족은 변산 반도에 자주 갔다. 서해안이 다 그렇지만 서해 파도는 뻘 반, 물 반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바다는 아니다. 흐린 날에 바다색은 오히려 회색에 가깝다. 맨발로 백사장을 걷다 보면 조개껍데기에 발바닥이 찔린다. 백사장은 파도에 밀려온 수초 때문에 심란하다. 그래도 난 서해안이 좋았다. 밀물과 썰물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갯벌에서 숨바꼭질하는 조개 찾기도 재미나다. 내가 20대 후반에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 갯벌에서 촬영하다가 생합을 처음 맛봤다. 전에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다른 조개와는 달리 생합은 뻘을 빼지 않고도 그 자리에서 바로 먹을 수 있었는데, 입에 넣자마자 신선한 바다향과 고급스러운 조갯살이 입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맛이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생합보다 맛있는 음식은 없다. 물론 그때는 새만금 둑을 막기 전이다.
어쨌든 바다에 왔으니 우리는 해산물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생선튀김 세트를 주문했는데, 나온 걸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멸치(아마도 앤초비)와 아무리 커도 손바닥보다 작은 생선들, 그리고 아마도 냉동 오징어가 아닌가 싶은 오징어링 튀김이었다. 회는 당연히 없었다. 눈 호강만 하면 뭐하나, 먹을 게 없는데. 먹대장들에게 지중해 바다는 싱겁기가 짝이 없다.
지중해는 인류사의 중심 중 중심이었다. 유럽, 아시아, 아랍, 북아프리카 21개 나라가 지중해를 감싸 안고 있다. 이집트 문명, 그리스 문명이 지중해에서 탄생했고, 페니키아, 아시리아, 헬라, 비잔틴, 로마제국 등 수없이 많은 고대 제국이 지중해에서 태어나 소멸했다. 인류사적으로 지중해의 가치는 엄청나다. 그러나 바다 그 자체로 보자면 지중해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 다른 대양들보다 훨씬 작고 수심이 얕다.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라서 해수가 자유롭게 들고 나가지 못한다. 지중해 영역 안에서만 돌고 도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중해 주변 21개 국가가 방출하는 하수와 폐기물은 지중해의 수질과 생태계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기후 변화의 영향도 심각하다. 수산물 남획은 지중해 생태계를 오랫동안 위협해 왔다. 키프로스에서 장을 보러 가보면 섬나라답지 않게 수산물이 빈약하다. 현지인들도 생선보다 돼지고기를 즐긴다. 마트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수입 냉동 생선이다. 현지인 동료들이 하는 말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데 요즘은 생선 보기가 훨씬 힘들어졌다고 한다.
키프로스는 관광이 가장 큰 수입원이라 전망 좋은 해안가에는 고급 리조트가 즐비하다. 하지만 해안을 개발하고 이런 관광 인프라를 건설하려면 치러야 하는 몫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 바다라고 왜 산호초와 해초군락이 처음부터 없었겠는가. 우리가 갔던 프로타라스는 키프로스의 남동쪽 끝인데 거기서 동쪽으로 더 내려간 바다에서 상당한 양의 천연 가스 매장량이 발견되었다. 추정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40세제곱피트 이상의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천연가스 개발은 전통적으로 관광과 서비스업에 의존해 온 키프로스 경제에 기회가 될 수 있을 터다. 키프로스는 자체 기술력이 없는 것 같다. ExxonMobil, Total 및 Eni와 같은 외국 석유 및 가스 회사에 탐사 및 개발 사업권을 주는 것을 보면 그렇다. 에메랄드빛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저기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천연가스 유전을 생각해 본다. 외국 회사가 유전을 개발하면 키프로스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이익이 돌아올까? 그리고 이 예쁜 바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다의 가치를 이거다 저거다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먹을 것이 많은 바다가 좋은 바다이고, 누군가에는 경치가 좋고 물이 깨끗하면 좋은 바다고, 누군가에게는 돈이 되는 바다가 좋은 바다일 것이다. 우리 가족이 키프로스에 온 지 이제 세 달째다. 키프로스와 지중해는 마치 엄마와 자식같이 뗄 수 없는 관계다. 비가 내리면 ‘지금 바다에도 비가 내리려나? 이 비구름은 바다에서 왔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어제 아이들 학교에서 바다를 주제로 한 미술대회를 한다는 안내장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말해주니 신이 나서 방방 뛰며 꼭 1등을 하겠다고 난리다. 내 아이들은 어떤 바다를 그릴까. 엄마로서 바라기로는 내 아이들의 그림 속 바다는 보기만 화려한 바다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수영하고 일광욕하는 사람만 가득한 바다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미역과 다시마가 너울너울 춤추고 조개가 숨바꼭질하는 바다를 그렸으면 좋겠다. 내 아이들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바다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이 가득한 그런 바다였으면 좋겠다. 지중해가 건강해야 키프로스도 건강하다. 키프로스가 건강해야 우리 가족도 건강하다. 이곳은 곧 여름이 시작된다. 아무리 피곤해도 해변에 가고 산에도 자주 가야겠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건강한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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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묵상 시리즈 1_ 구속의 삶과 생태적 삶 : 김령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