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삶과 생태적 삶, 그 자연스런 이야기 -인터서브 생태 전문위원 김령
묵상 본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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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창세기 1장 1절은 신자마다 다양하게 느껴지겠지만 개인적으로 제겐 그 어떤 말씀보다 가장 묵직하고, 장엄하게 다가옵니다. 마치 왕의 등장을 알리는 웅장한 트럼펫 연주가 울려 퍼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느꼈을까? 제 자신도 궁금하여 생각을 거슬러 가보니 중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귀가하던 한 날이 떠오릅니다.
저는 모태 신앙으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학교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회심’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후 친구들과 성경을 탐독했는데 모든 말씀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세상은 하나님의 진리로 가득 차 보였습니다. 특히 성경 일독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창세기 1장 1절은 언제나 저와 친구들에게 가장 권위 있고 감격스러운 말씀이었습니다. ‘온 만물과 나를 지으신 창조주가 계시다! 그는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모든 만물은 얼마나 귀한가!’ 그래서 저는 지금도 ‘창조의 아버지’ ‘큰 영광 중에 계신 주’같이 창조를 노래한 찬양을 가장 좋아합니다.
하루는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에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검푸른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습니다. 그 경이로움에 이끌려 저는 그 자리에 서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찬송을 혼자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러자 별안간 그 하늘이 제게로 내려앉아 저와 우주가 하나 된 것과 같이 느껴졌고, 저는 그대로 압도되었습니다. 그 느낌은 지금도 생생해서 저는 가끔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고 싶을 때면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운이 좋게도 학교가 서울 변두리에 위치해있어 저와 친구들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찬양하는 일들이 꽤 자연스러웠습니다. 특히 관찰력이 뛰어났던 저의 절친은 가로수를 보며 길을 걷다가 보는 각도에 따라 수 없이 변하는 나뭇잎의 면들을 보며 ‘맙소사! 하나님이 바로 입체를 창조하신 분이었어! 나는 고작 평면만 생각하는데! 난 오늘 입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났어! 할렐루야!’라고 고백하며 하루 종일 감격하던 날도 기억납니다. 창조 세계 속에서 창조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은 이렇게 일상이 되고 자연스레 우리의 찬양의 원천이 된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본격적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하신 부모님을 따라 지금의 양평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더 자주 피조세계 속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집 앞 작은 나무에 처음 보는 새가 손바닥만 한 집을 짓고 은행알만 한 파란 알을 낳고 키우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이사 후 첫 날, 자려고 불을 끄는 순간 창문 가득 별이 박혀서 또 조용히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양을 불렀지요. 더우면 얼음같이 차지고 추우면 저절로 미지근해지는 지하수로 계절마다 편하게 설거지를 하고 세수할 때마다 세심한 하나님의 배려를 느꼈고, 마을의 산이 철철이 고운 빛깔로 갈아입으면 창조주의 미적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고 경이롭고 앞으로도 경이로울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를 심고 키우며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곤 했습니다. 언젠가 페이스북에도 썼지만, 철마다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 저는 마치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쌉싸래한 봄나물을 먹어보렴. 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이 기지개를 켤 거야. 여름엔 더위 먹지 말라고 겨울에 찬 기운을 먹여 보리를 키워냈단다. 가을엔 추위를 대비해서 오곡백과를 두루 잘 먹어두렴. 과일엔 몸에 좋은 온갖 성분들을 넣어놨는데 안 먹을까 봐 새콤달콤 맛나고 모양도 예쁘고 식감도 좋게 만들었어. 겨울에 먹는 것들은 모두 기침과 해열에 좋도록 준비했단다. 향도 즐기라고 각종 허브도 만들었어. 너희의 오감과 오장육부가 모두 행복하기를. 그렇지만 과식은 금물이야. 식탁을 위한 무수한 피조물들의 희생을 잊지 말련. 사랑해!’
하나님은 창조 세계 속에서 이렇게 저와 만나 주시고 대화하시고 고백하시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만물을 누리고 감사하며 저와 친구들은 거기서 행복하게 거했습니다.
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8:22)
하지만 우리는 머지않아 로마서에서 피조물의 탄식을 만났습니다. 각종 환경 오염에 관한 뉴스들은 이 말씀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대기 오염과 먹거리들의 오염 뉴스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내에 다녀와서 코를 풀면 시커먼 매연이 휴지에 묻어 나오던 것이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미세먼지’라는 정체불명의 용어가 우리의 일상이 되어 있습니다.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저와 친구들은 이 고민과 분리되어 산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주어진 음식은 독약이 아닌 이상 절대 남기지 말자. 길거리 휴지는 무조건 줍자. 연습장은 연필로 한 번, 볼펜으로 두 번 쓰자. 옷은 되도록 얻어 입자.’ 같은 작은 실천들을 무의식적으로 실천했습니다. 교회에서 매주 받은 하나님 나라와 우리의 청지기 됨에 대한 교육도 이런 일상의 선택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생태는 신앙에서 따로 분리된 이슈가 아니라 하루하루 살면서 해야 하는 모든 결정에 바탕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을 때도 이 집의 쓸모가 다했을 때 되도록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재들로 짓고 싶어 단열에 좋은 플라스틱 창틀보다는 금속재를 택하고, 바닥재는 시공이 편한 플라스틱 장판 대신 종이 장판에 콩기름을 바르고, 나무에 니스보다는 들기름을 칠하는 등의 선택들입니다. 모두 불편하고 구하기도 어렵거나 더 비싸기도 합니다. 관리도 어렵고 심지어 더 지저분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선택에 ‘좀 더 나은 지식이 있었더라면...’ 하는 것 외엔 후회는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때 우리가 걱정했던 대로 피조 세계는 더욱 망가졌습니다. 각종 동물 학대와 인간이 산과 들, 바다와 강을 헤집는 뉴스는 눈과 귀를 막고 싶을 만큼 처절하고 잔인합니다. 살아갈수록 인간의 죄로 피조물들이 탄식한다는 말씀과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길 고대한다는 말씀이 진리임을 체감합니다. “이 땅에 교회가 그렇게나 많은데 왜 피조물들은 여전히 탄식하고 있을까! 왜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피조 세계의 탄식을 구원과 연결 짓지 못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한 교회 후배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저는 그 말씀을 읽을 때 ‘아, 난 죄인이구나. 내 죄를 더 회개하고 오늘은 실수하지 않고 살아야지.’ 이렇게 자동으로 적용했어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본문에 피조물이라는 등장인물이 분명히 있는 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어쩐지 그 등장인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자동화된 기계처럼 자기 내면의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시도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피조물의 고통은 이제 모를 수 없습니다. 손안의 휴대폰과 TV만 켜면 바로 보이고 들립니다. 너무 처절해서 마주하기 고통스러울 뿐이겠지요. 이제는 더 이상 이들의 탄식을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때론 아직 내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피조물까지 신경 쓰겠냐는 질문도 만납니다. 나와 이웃과 생태는 이 창조 세계 안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 따로 우선순위가 있을까요? 구원은 이기적인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을 성령께 맡긴다면 우리는 분명 타인과 피조 세계를 위한 더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창조 세계 돌봄이 지금처럼 이슈화되지 않던 시절에도 본능처럼 모든 재화를 아껴 쓰고, 절제하고,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돌보며, 되도록 천연재료를 골라 써 온 제 주변의 흔한 그리스도인들이 그 증인일 것입니다. 복음을 처음부터 그런 세계관으로 배우면 제일 좋겠습니다. 늦게나마 현재 이를 위해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분명 피조 세계의 오랜 탄식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긴 기다림 끝의 응답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믿는 자는 모두 부디 이때를 놓치지 말고 오늘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부지런히 일하시는 성령의 음성과 사역에 반응하고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뜻깊은 코너를 만들어 주신 인터서브와 첫 장에 제 글을 올리도록 자원을 늦게 해 주셔서 첫 타자의 영광을 얻게 해주신 INCA. 멤버들께 감사드리며 주님께 제 삶을 드리기로 결심한 이후 창1:1장과 롬8:22, 이 두 구절을 묵상하며 반응해 온 제 구속의 삶의 표현 나눔을 이만 마칩니다.
------ 생태적 묵상은 2달에 한번씩 연재됩니다.
생태적 묵상 2_ 천하만물에게 선포된 복음: 최종태 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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