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History

인도 제나나에서의 총체적 사역으로 시작된 인터서브의 지속적인 섬김은 오늘날까지

그 정신을 이어받아 화려하거나 자신을 드러냄 없이 묵묵히 그 사랑의 섬김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852

제나나,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서. 인터서브의 출발

1800년대 인도의 콜카타. 제나나 Zenana 는 당시 대가족에 속한 여성들이 외부와 격리되어 평생을 보내는 규방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1852년 “어둡고, 격리된” 이곳의 여성들을 위해서 영국 여성들이 기도하며 콜카타에 학교를 열고, 두 명의 여성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도시 곳곳의 제나나를 방문하고 글과 성경을 가르치는 ‘제나나 성경 선교회’ (Zenana Bible Mission)가 인터서브의 시작이었습니다.

1871

최초 여성 의료 선교, 총체성의 시작

제나나 여성들의 보건를 위해 두 명의 여성 의료 선교사가 파송되었습니다. 한 명은 도착 전에 긴 여정 중 병사했고, 또 한 명 역시 도착한지 몇 달 만에 여독과 과로로 사망했습니다. 이들의 희생이 인터서브 의료선교의 시작이었습니다. 1880년 제나나 성경 선교회에서 제나나 성경의료선교회 Zenana Bible and Medical Mission (ZBMM) 으로 개명하고 인터서브는 선교의 총체성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913

라호르, 연합 사역 전통의 시작

ZBMM은 1913년에 펀잡 지방 라호르에서 여성을 위한 대학교를 만들면서, 그 지역에서 일하던 다섯 개의 선교단체와 연합하여 이사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이것은 네팔, 방글라데시, 몽골, 아프가니스탄,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중국 서부 지역 등으로 이어지는 파트너십 전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1936

초교파단체로 남다

세계 최초의 초교파단체로 시작한 인터서브는 국가주의와 교단주의가 일반적이었던 1900년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36년 ZBMM의 재정을 크게 감당하던 영국국교회가 교단성을 주장하면서 국교회의 교단 선교부로 들어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사회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의논했고 재정적 어려움에도 초교파단체로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은, 인터서브가 자체의 생존보다 주님이 주신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김을 보여줍니다.

1957

펠로우십 Fellowship 으로 이름을 바꾸다

제나나 성경의료선교회 ZBMM은 단체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성경 의료 선교사 협의회(The Bible and Medical Missionary Fellowship)로 개명했습니다. 선교회 Mission에서 선교사 협의회 Fellowship으로 바꾼 것은, 당시의 선교 관행이었던 제국주의적인 태도를 벗어나 인도 사역자들과 교회들을 동등하게 협력하는 동반자적 관계로 보는 관점의 변화였습니다.

1973

모든 재산을 이양하다!

1960년대부터 인터서브는 인도에 많은 학교와 병원들을 인도 교회에 무상으로 이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의료교육협회, 뭄바이의 퀸메리 고등학교, 판츠가니의 킴민스 고등학교 등 수많은 고아원과 학교들을 인도 현지 리더십에 모두 이양했고, 현지 리더십의 권위 아래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서브는 자산과 사역이 아니라, 가치와 사람에 집중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1986

함께 섬기는 인터서브로

1980년대 중반부터, 선교사 missionary라는 명칭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필요와 현지 교회 리더십의 성장과 함께 단체의 정체성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1986년 공식 단체명을 “성경/의료 선교사 협의회”(BMMF)에서 “국제 서비스 펠로우십”(International Service Fellowship) 의 약자로 인터서브 Interserve로 개명하여 단체의 총체성과 국제 협력성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선교사라는 명칭을 ‘파트너’로 명명함으로 상호 존중과 동등의 문화를 확인했습니다.

1990

인터서브 코리아의 시작

1990년 중반부터 이화여대 전재옥 교수, GMF의 이태웅 대표, 남진선 IVF 총무 등이 인터서브를 한국에 처음 소개했습니다. 국제총재였던 마이클 로멜리 Michael Roemmele 와 인터서브의 여러 선임 선교사들이 한국을 거듭 방문하며 남진선 총무와 박재형 이사장의 인터서브 설립 준비를 도왔고, 1990년 12월 1일 창립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1993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첫 한국팀의 파송

1993년 7월 정마태, 이은숙 파트너 가족과 10월 권우영, 이영진 파트나 가족이 파키스탄에 들어갔습니다. 정마태와 이은숙 파트너는 페샤와에서 파키스탄 교단의 목회자로, 권우영과 이영진 파트너는 싸히왈에 있는 병원에서 일함으로, 성경과 의료 총체성으로 시작했던 인터서브 초기 역사를 재현했습니다.

2011

한국에서 열린 국제 리더십 총회

파송 20년 뒤, 인터서브코리아는 국제 리더십이 4년마다 모이는 국제 리더십 총회 Leaders’ Consultation을 2011년에 주최했습니다. 이 총회는 당시 세계 선교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10년 동안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였습니다. 새로운 인터서브가 제자양육과 교회협력의 정신을 회복함에 인터서브코리아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2016

한국이 선교지로, Everywhere to Everyone!

인터서브코리아는 한국 내에 늘어나는 다문화성과 통일 이후 선교를 바라보며 2016년 국제 인터서브와의 협의 후, 한국 내에 있는 “아랍과 아시아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에 파트너를 배치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태원 무슬림 사역, 안산 다문화 사역, 탈북민 여성 사역 등 다양한 사역이 시작되어 진행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