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이사장
인터서브코리아의 연례 보고에 이사장으로서 마지막으로 인사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인터서브와 함께 한 시간과 이 글을 보실 여러분께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드리고, 개인적인 부끄러운 간증 같은 이야기로 인사말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걸어온 길은 이 연례보고서를 통해 인터서브 공동체로서 함께 받은 은혜를 확인하시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한 편으로 반성과 의견을 나누어 주셔서 인터서브의 앞길에 동행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국내외의 문화가 다른 곳에서 그 분들과 일상을 함께 하시는 파트너 여러분들, 서로 다른 세계관들이 뒤섞여 있는 각자 삶의 영역에서 선교적 삶을 사시는 펠로우 여러분들과 파트너들을 후원하시는 분들, 본부에서 조샘 대표를 비롯하여 세계를 섬기시는 매니저 여러분들, 그리고 인터서브의 나아갈 방향을 함께 숙고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전 현직 이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연합하여 인터서브 공동체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모두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한마음으로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 왔습니다. 선교도 그랬습니다. 교회 개척, 미전도 종족이 강조되던 시기에도 이미 선교 관련 글이나 책의 제목에 “변화하는”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곤 했습니다.1 세상과 선교가 변화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먼저 변해야 할 존재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정통’과 ‘보수’를 강조하는 교회에서 ‘확신’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그 확신에 기반하여 선교사가 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확신의 죄’를 깨달은 것은 선교지에 나가기 전에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선교학을 공부하던 때였습니다. ACTSAssociated Canadian Theological School는 놀랍게도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서로 다른 5개 교단이 연합해서 운영하는 신학대학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저에게는 당시에 접한 이 사실은 신기함을 넘어 충격적이었습니다. 조직신학은 침례교 교수가 쓴 교재로 배웠고, 재세례파 교수에게 기독교 역사를 배웠습니다.
긴 이야기를 짧게 드리자면, 그 이후로 제 안에 있는 ‘확신’이 도리어 기독교의 본질을 배반하여 배제와 심지어 혐오의 마음을 가지는 근원이 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기독교가 아닌 것, 예수님께서 뜻하신 바가 아닌 것을 가려내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동방교회의 신학 방법이라고 거들떠보지 않던 부정신학Negative Theology은 다른 여지가 없이 확신을 심어주는 긍정신학 보다 복음의 본질에 다가가는데 유용한 방편이 되기도 했습니다.2
변화하는 눈으로 바라보니 나 자신뿐 아니라 한국교회와 선교의 안타까운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만연한 기독교 승리주의나 교회 중심성에만 충만했던 시간을 되돌아보아야 했습니다. 선교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국선교 중심성에 우쭐하지도 않았어야 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언제나 변방이 중심이 되어가는 역사였습니다. 로마 변방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역사로부터 서구 중심축의 변화에 이르면서 이제 “세계기독교”3 를 여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을 바라봅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화하는 선교를 감당해야 하는 우리는 한때 서구 기독교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선교 중심성을 겸손하게 내려놓아야할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세계기독교”의 한 지체됨을 반가워하며, 겸손하게 섬기는 인터서브 되기를 기도합니다. 좁은 시각으로 변화에 허둥대며 반응Reactive하기보다 능동적으로 앞서가며Proactive 하나님의 거시적인 역사를 즐거워하는 인터서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1] 폴 히버트, 레슬리 뉴비긴,
데이비드 보쉬 등의 저서 제목들이 그렇기도 하다. [2] 부정신학은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겸손함으로
신학하는 자세라 할 수 있다. “당신이 그분을 파악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어거스틴의 말처럼 우리가 완벽하게 하나님을 한 마디로 “...이다.”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니다”라고는
할 수 있는 것처럼, 아닌 것을 구별해 내는 방식으로 본질에 다가가는 신학 방법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혐오를 좋아하시지 않는다’라고 할 수는 있다. (예: 예멘
난민 입국을 거부하는 기독교인을 보면서) [3] 앤드루 월스는 서구 기반이던 기독교의
중심이 변방(아프리카, 아시아)으로 옮겨졌고 북반구 중심의 기독교가 남반구로 이동하는 것을 바라 보며 “세계
기독교” 시대를 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읽어냈다. 마크 놀도
이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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