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들과 함께 사는 법을 농사에서 한 수 배웁니다. 박천민 선교사 2년 전, 저는
서울에서 주로 무슬림들을 돌보며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만남을 갖던 이주민들과 난민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지방으로 떠나곤 했는데, 저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2019년 10월, 이곳 순천으로 이주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꿈을 순천 외곽에 자그마한 텃밭과 함께 터 잡으며 마침내 이루게 되었습니다.
봄이 되면 각종 채소의 모종들과 씨앗들이 종묘사에서
우리 집 텃밭으로 이주해옵니다. 오이, 고추, 상추, 가지, 호박, 깻잎, 쑥갓, 시금치 등 각양각색들이 덩실덩실 어우러지는 모습들은 마치 각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의 모습 같아 보입니다.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식물들이 자란다고 하지만,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지 않고 햇빛이 없다면 모든 농사는 수포가 되는 자연의 순리는 이주민 사역자로서 얼마나 겸허해야 하는지 경각심으로 다가옵니다.
추수보다 기경起耕 잘 아시는 바처럼 농부는 봄이 되면 분주해지기 시작합니다. 밑거름을 주고 땅을 기경하는 일은 한 해 농사의 기본이자 핵심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좋은 밭(마13:8)이 아니면 열매를 맺힐 수 없다는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역현장에서는 부지불식간에 기경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추수와 열매에 급급한 저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고전3:6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말씀처럼 열매는 하나님의 몫임을 알고 저의 몫인 기경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순수의 마음을 지켜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돌과 잡초를 뽑아내고, 밑거름을 충분히 주며 기경하면 좋은 땅이 되어 주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신통함이 있습니다. 또 좋은 땅에서는 필경 좋은 열매가 맺히는 정직함과 은혜가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 환경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척박해져 가는 이주민들은 내면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필요로 하며 내심 요청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농부의 기다리는 지혜 기경한 땅에 채소 씨앗들을 뿌리면 대개는 약 1주일 전후로 싹이 트며 방긋 웃음을 선사합니다. 마치
새 생명의 신비를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종종 이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망각하고, 자연의 넉넉함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보이곤 합니다. 씨앗을 뿌린 다음날 혹시 하룻밤 사이 싹이 트지 않았을까? 하고 심겨진 씨앗들을 바라볼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황급한
마음이 발동하여 심겨진 씨앗을 파내 보려는 우스꽝스러운 특심을 내기도 하고, 갓 태어난 어린 새싹에
왜 빨리 크지 않느냐며 보채기도 하지요. 조급한 마음으로 농사일에 접근한다면 당신은 바로 초보
농부임이 분명합니다. 충성스런 농부는 기다릴 줄 알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저는 농사일을 통해 농부의 마음을 더욱 갈고 닦아서 이주민들을 섬기는 지혜를 배우고자 합니다. 이주민들을 좀 더 잘 섬기기 위해 꾀부리지 않는 착하고 충성스러운 농사꾼이 되고 싶습니다.
순천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코로나로 인해 감소된 수치이기는 하지만 2021년 7월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여수, 순천, 광양 지역에 8,179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신분으로 다채롭게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만날 때마다, 마치
주님의 정원 들녘에 적막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가까이서
만나는 이주민들은 중국, 베트남, 태국, 우즈벡, 캄보디아, 네팔, 터키 등에서 왔습니다. 원격으로 시리아와 이집트 형제들도 만나고
있으며, 최근엔 멀리 남미 베네수엘라서 온 형제도 만났습니다. 이제는 지구촌 사람들이 점점 더 더불어 가는 세상임이 분명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외로움을 안고 있다지만 하물며 부모형제 고향을 떠난 이주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할지 이해하며 저들에게 친구처럼 다가가려
노력합니다. 이들의 현실적 어려움의 첫 번째는 한국어 배우기입니다.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의 자부심을 가지고, 대면과 비대면을 넘나들며 그들을 섬기는 중입니다. 고단한 일상을 계속하다 보면 당연 육체의 상함도 뒤따르지요. 적절한
병원 치료를 위해 네이티브의
동행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 집 텃밭에서 나온 싱싱하고 우수한 유기농 야채들을 나눔도
작지만 큰 행복입니다. 특별히 멋진 일을 감당하지는 못하지만, 이주민이요 나그네 되신 분들과 밥을 나누어 먹고 함께 수다 떨고, 기회가
되면 운동도 같이 하는 일들이 저희 부부의 취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심 받아 이 땅에 기꺼이 찾아와준 이주민들을 모른 척한다면 참된 경건(약1:27)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이 되겠지요. 부족하게나마 나그네들을 마음으로, 정성으로 함께하며 점점 그들이 우리의 친척이 되고 가족이 되어지는 기쁨을 누립니다. 머지않은 날 저들의 가슴 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저분들을 바라볼 때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더욱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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