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 물탱크에 물 채우는 날
부족함으로 가득 채우기
이시은 MK
9살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카자흐스탄으로 이사를 갔다. 가야 하는 이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지만 처음 만난 카자흐스탄의 모습만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만년설이 소복하게 쌓인 텐샨 산맥 아래 오래된 회색빛 소련식 건물들은 칙칙하기 그지없었고, 쨍쨍한 햇빛 아래 대로를 따라 지그재그로 이어진 노란 도시가스관은 꼭 미니언즈를 이어 놓은 것 같았다. 어딘가 허름한 도시의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선 마치 70~80년대 한국의 모습 같다고 하셨다.
카자흐스탄에 정착하는 것은 불편함에 적응하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 식품은 찾기 어렵거나 터무니없이 비쌌고 내륙 지방인지라 신선한 생선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국과 달리 석회가 가득한 카자흐스탄의 물로 샤워를 하면 씻은 후에도 어딘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압이 약해 웬만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해야 했고 물이 끊기는 일도 다반사라 커다란 장독에 비상용 물을 구비해 뒀다. 이렇게 당연했던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삶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 중 가장 불편한 건 정전이었다. 정전은 한 달에 두어 번씩 예고도 없이 불쑥 닥쳤다. 야속하게도 항상 전기가 필요한 저녁 시간에 전기가 나가곤 했다. 정전이 힘들었던 이유는 단순히 불빛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전기가 없으면 거의 모든 일상이 멈춰버렸다. 와이파이가 안돼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고 수도도 금방 끊겨 변기의 물을 내리거나 세수를 하지도 못했다.
처음 정전이 닥쳤을 때는 한 순간에 어두워진 세상이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온 가족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한 마음을 안고 전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수차례 같은 상황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은 전기가 없이 사는 방법을 터득했다. 전기가 나가면 집안에 있는 모든 양초를 가져와 성냥으로 불을 지폈다. 정체 모를 향초부터 긴 초에 크리스마스 초까지 전부 자신이 낼 수 있을 만큼의 밝기를 내뿜었다. 안락한 촛불 빛 아래에서 사춘기 소녀 시은이는 괜히 감성적인 노래를 들으며 분위기에 취하곤 했다. 전기가 없을 때에만 가능한 일들도 있었는데 바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다. 평소에는 각자 방에서 따로 보냈을 시간에도 정전이 되면 불빛을 아끼기 위해 모두 한 공간에 모였다. 또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배터리를 절약하기 위해 핸드폰을 내려놓으니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어둠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전기가 없는 불편함 덕분에 오히려 하루가 더 다채로워진 것이다.
정전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삶 속의 모든 부족함은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한국 과자는 특별한 날에만 뜯어먹는 우리만의 샴페인이 됐고 하루 종일 집에 물이 안 나오는 날도 물을 채우러 친구집에 가는 즐거운 날이 됐다. 인터넷이 느린 건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딱 하나 정해 온 가족이 모여 보는 순간도 하루의 하이라이트였다. 어딘가 어정쩡하고 부족한 일상이었지만 더 많은 사소한 즐거움들이 그 속에 숨어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카자흐스탄에서의 부족함은 넘치도록 메워졌다. 전기와 물이 끊길 걱정도 없고 먹고 싶은 음식은 언제든지 배달시켜 바로 먹을 수 있다. 4K 화질로 영상을 시청해도 버퍼링이 생기지 않고 본방송으로 드라마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부족함이 가득했던 카자흐스탄 생활이 그리워진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그리운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그 부족했던 시절이 정말 행복했다.
세상은 무엇이든 가져야 행복하다고 얘기한다. 돈이 있어야, 좋은 직장과 집이 있어야 행복해지고 진정한 나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추구하는 삶이 전기가 있는 삶과 같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반대로 부족함에 대한 인간의 일차적인 반응은 실망감 또는 더 안 좋은 상황을 모면했다는 안도감이다. 그렇지만 카자흐스탄 생활을 통해 나는 많이 가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니, 오히려 부족했기에 더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성공과 실패가 명확한 이분법적인 사회 속에서 나는 부족함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가 단순히 자기위안이 아닌 실체적인 감사와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온전히 채워주신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나의 부족한 주변 환경은 나를 정의하지 못했다.
다시 돌아온 한국 사회는 너무 바쁘고 복잡하다. 나 빼고 모든 사람이 잘나 보이고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이 느껴지는 날들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내 부족함을 온전히 채워주시고 나의 연약함까지 허투루 사용하시지 않는 분 안에서 감사하려 한다.
▲ 셋째 성은, 첫째 형민, 둘째 시은 남매
이시은 MK는 9살이 되던 2011년 선교사이신 부모님(이성훈, 이선화 파트너)를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갔습니다. 현재는 한국에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람들, 특별히 몸이 아픈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꿈꾸며 식품 공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부족함 중에 온전함을 배운 귀한 이시은 MK가 이 땅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멋진 청년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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