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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상태에서 자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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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6 14:19:11

Photo insung yoon by on Unsplash 


노예 상태에서 자유로 


최종태 이사/ InC 팀 Interserve Creation Care team




로마서 821, “from its servility...into the freedom” 

 

6년하고도 5개월 전인 2015227일 오후 3, 회사가 입주해있는 빌딩의 출입문을 열고 거리로 나왔다. 봄 자락에 들어서인지 날씨는 맑고 포근하였다. 내 마음도 날씨와 닮아 있었다. 병원을 떠나 제약회사에서 일한 지 17년이 지났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그렇듯, ‘이 날줄과 씨줄로 얽힌 시간이었다.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할 터이니 계속 근무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나의 결심은 이미 굳어있었다.

 

거리로 나선 나는 곧바로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리는 전국귀농운동본부 정기총회에 참석하였다. 나는 아직 회원도 아니었고, 한 번도 이런 모임에 참석한 경험이 없었지만, 설마 문전박대하랴는 마음으로 무조건 회의장에 들어섰다. 모임 장소에서 안내하는 사람이 따듯한 인사와 함께 회의자료를 건넸다. 나는 쫓겨나지 않음에 안도의 숨을 쉬며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회의가 시작되고, 각자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이 진행되었다. “어디에서 무슨 모임을 대표하여 참석하였고, 아무개를 다시 만나니 반갑다는 식이었다. 이윽고 60명 남짓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너는 누구냐?”하고 묻는 것만 같다. “오늘 저는 회사를 사직하였습니다. 생태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이곳에 참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고 호기심과 환대의 눈으로 나를 환영하였다.

 

이렇게, 익숙한 삶을 작별하고 알 수 없는 삶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성공회 신학자인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한나의 아이-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IVP, 2017)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사는 법을 배울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 된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회사를 떠나고 6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랬다. 뚜렷한 계획도 없이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는 나의 모습은 어쩌면 430년을 거주하던 이집트의 고센 지방을 효모도 넣지 않고 구운 빵을 서서 먹고 서둘러 떠나는 하피루인들과 닮아 있었다. 나의 정처定處 없는 모습을 보는 아내의 시선이 흔들렸다. 사실 나의 마음 역시 희망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하나님은 6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생명생태안식의 땅으로 나와 우리 부부를 인도해 오셨다같은 날에 퇴근과 출근을 했던 시간들은 나의 삶에서 하늘과 별과 달과 꽃과 새소리들과 흙을 앗아갔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버스가 사람을 타고, 밥이 사람을 먹는시절이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에덴에 두시어 섬기며 돌보라고 하셨지만, ‘apar로 만들어진 사람adam들은 adamah를 파헤치고, 그 위를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었다. 아다마는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마시지 못하고, 숨을 쉬지 못해 질식하며, 아파르는 안식할 장소를 찾지 못해 공중을 떠돌다 하늘을 뿌옇게 채운다. 벌들과 나비들은 도시를 떠나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최초로 복을 내리신 물고기들과 새들은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플라스틱 조각에 내장이 채워져 죽어간다.

 

망가져 가는 별, 지구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생태적 삶이란 무슨 의미일까? 


성경은 죄와 구원, 휴거와 천국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지구에 최후심판이 임하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더 불바다에서 건져 올려야 하지 않는가? 과연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구속사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면 창세기 3장에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 20장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끝난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는 죄와 구원뿐 아니라 창조와 새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죄와 구원은 중요하지만, 복음의 온전한 모습은 아니다. 온전한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필수이다인류 최초의 남자와 여자는 아직 죄를 짓기 이전이므로, 구원의 소식으로서의 복음에 대해서는 듣지 못하였다. 따라서 선교를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그들은 선교사도 아니고, 그들의 삶은 선교도 아니었다. 이러한 관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경 전체의 이야기에서 부분일 따름이다


창조의 빛 속에서 아담과 하와는 최초의 생태선교사이었다.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에덴동산으로 보내심을 받고, 동산을 돌보며 지키라는 사명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사과나무를 지키고, 생명나무를 돌볼 임무가 있었다. 창조주는 사람, 아담에게 동물들을 하나하나 가까이 데려오셔서 소개하시고, 사람이 이름 짓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사람과 동물들에게 푸른 채소를 먹을거리로 주셨다. 노아의 홍수 이후로 육식을 허용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골로새서 123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일꾼으로 부른다. 놀라운 사실은 이 복음이 하늘아래 만물에게in all creation under heaven(NASB, ESV, NET) 전파되었다는 선언이다. 갈라디아서 38절은 성경이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증언한다. 아브라함에게 전해진 복음? 창세기 122절은 아브라함에게 복이 되어라be a blessing고 말씀하신다누구에게 복이 되라고 하신 것일까? 창세기 123절에 그 대상이 땅의 모든 족속all the families of the earth으로 나타난다. 히브리어로는 (하 아다마)의 모든 미쉬파하mishpaha이다. 미쉬파하는 사람의 종족(10:5)이나 족속(10:18)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창세기 819절에서는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le mishpahah 방주에서 나왔더라에서도 사용된다. 모든 짐승, 모든 기는 것, 모든 새가 미쉬파하로 불린다. 미쉬파하의 기본 개념은 extended family이다이처럼 인간만이 아닌 모든 생물은 창조 시에 -특히 최초로 물고기와 새들에게 복주심으로-, 이후에는 노아언약, 아브라함언약, 시내산언약 -안식년과 희년 제도를 통해-,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로마서 821절에서 창조세계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에 동참하는 희망을 이야기한다(“the creation itself will be set free from its servility...into the freedom, glorious of the children of God”).

 

나와 우리 그리고 그들 역시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로 들어가는 일에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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