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캄보디아, 복음의 자리
한정민 선교사
1. 왜 이런 일이 캄보디아에서 벌어졌을까 — 그 이면의 이야기
최근 발생한 한국인 납치·감금 사건은 단순한 범죄로만 보기 어려운, 이 땅의 복잡한 현실과 깊은 상처를 드러낸 비극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해외 거점’이라는 말이 붙었지만, 그 속살에는 훨씬 오래된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오랜 내전과 독재, 부패를 지나 이제 막 성장의 갈림길에 선 나라입니다. 2000년대 이후 해외 자본이 빠르게 유입됐고, 지난 10여 년 동안 도시 곳곳에는 카지노와 온라인 게임 산업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여전히 가난과 불평등, 낮은 교육 수준 같은 현실이 남아 있습니다. 정부의 제도와 관리 체계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그 틈을 타 국제 범죄조직이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들은 제도의 허술함과 미래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절망을 교묘히 이용했습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탐욕이 가장 약한 이들을 집어삼킨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가 이런 오명을 스스로 원한 건 아닙니다. 이 나라는 여전히 치유해야 할 상처 위에 서 있지만, 그 속에서도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평범한 이들의 삶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첫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2. “우리가 왜 미움을 받아야 합니까?” — 현지인들의 마음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이들 가운데는 캄보디아 현지인들도 있습니다. 언론에서 “캄보디아=범죄국가”라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많은 현지인들은 억울함과 당혹스러움을 함께 느끼며 조심스레 고개를 숙입니다. 시장 골목의 상인들, 툭툭 기사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은 종종 한국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제 우리를 다 범죄자처럼 보는 건가요?” 이 질문에는 불만보다,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가 훼손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도 갇혀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현지인들은 이 범죄 구조 속에서 가장 먼저 이용당하고 버려진 피해자들입니다. 가난한 청년들은 ‘경비원’이나 ‘기사’라는 명목으로 고용되었다가, 범죄조직의 위협과 노동 착취를 겪으며 임금조차 받지 못한 채 방치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건을 ‘타자의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이곳의 많은 시민들은 여전히 선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한국 교민들이 세워온 학교와 병원, 아이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란의 한가운데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인들도 피해자예요. 그들은 우리를 돕던 사람들이잖아요.” 이 따뜻한 말 한마디가 교민 사회를 다시 붙잡아 주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우정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3. 흔들리는 신앙의 자리 — 멈춘 듯하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사명
이번 사건의 여파는 선교 현장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캄보디아에는 지금도 약 2천여 명의 한국 선교사와 가족이 학교, 고아원, 직업훈련센터, 교회 개척 등 다양한 사역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안전 문제로 여러 사역이 일시 중단되거나 규모가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외곽 지역에서 사역하던 분들이 이동을 자제하면서 현지 교인들이 영적·정서적으로 외로워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훈련 프로그램과 청소년 사역이 멈춘곳도 있고, 후원이 줄어들거나 끊겨 문을 닫은 선교센터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지난 10년간 도왔던 한국의 한 대학교 프로그램들이 있었는데 새로운 프로젝트가 이번상황으로 인해 취소됐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한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전합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선명하게 보이니까요. 이 땅의 아픔 속에서 복음의 필요를 더 깊이 느낍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복음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보여주는 믿음의 언어입니다. 선교는 안전한 자리에서의 봉사가 아니라, 상처의 현장 속에서 함께 울어주는 사랑입니다. 지금 이 땅은, 그런 사랑을 가장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4. 우리가 함께 드려야 할 기도 이제는 분노보다 연대가, 비난보다 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단지 ‘타인의 아픔’을 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을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캄보디아를 비난하기 전에, 왜 한국의 청년들이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이 땅의 제도와 사회가 범죄의 그늘을 감당하지 못했는지를 함께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번 일을 통해 교민 사회는 더욱 단단히 하나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선교단체, 정부, 언론이 함께 손을 잡고 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사랑과 정의의 질서를 세우는 일에 동참할 때, 하나님은 다시 이 땅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제가 사는곳은 프놈펜 최 외곽의 논땅을 매워 새로 타운하우스를 조성한 곳이라 사방이 넓은 논입니다. , 매일 오후가 되면 굳어진 그 넓은 논에서 사람들이 연을 날립니다. 매일 푸른 연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지요. 현지 사람들은 그것을 ‘클라엥 아엑’이라 부릅니다. 낮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하늘로 오르는 그 연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절망의 땅이라 불리는 곳일수록, 하나님의 빛은 더 강하게 비춘다는 사실을요.
하나님, 이 땅의 상처를 보게 하소서. 캄보디아의 가난과 불의, 그리고 한국 사회의 절망이 맞닿은 그 자리에서 우리가 눈 돌리지 않게 하소서. 이 땅의 청년들에게 돈이 아닌 소명으로 살아갈 힘을 주시고, 선교사들에게 두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택할 믿음을 주소서.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할 지혜를 주시며, 어둠을 밝히는 빛의 사람으로 우리를 세워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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