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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씨앗, 평화의 꽃
Level 10   조회수 205
2024-06-21 11: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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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선교사



 

하산, 너 교회 찾았냐?” 답을 못하는 나에게 이브라힘이 말했다. 

“네가 다닐 만한 교회를 찾았어. 가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찾아볼께.” 이브라힘은 내가 교회를 찾지 못한다는 생각에 교회를 알아보았다. 그는 신실한 무슬림이고 작년에 이슬람 성지 순례를 다녀온 하지​1)였기에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하산, 내일 우리 집에 올 수 있어?” 라시드는 손주를 위한 행사를 하기로 했다며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얼마 전 그는 두 번째 손주를 보았다. 잔치 날, 이맘​2)이 오고 남자들은 모두 방안에서 이슬람식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내가 들어가자 모두 좋아한다. 그들은 내가 기독교인임을 알고 있다. 이맘은 한때 새벽마다 나에게 코란 구절을 보내며 전도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기독교인이 아니라 자신들의 친구로 대하였다. 남성들이 예배를 드리는 동안, 아내는 참석한 여성들과 어울렸다. 아내가 그의 아내에게 돌잔치도 아닌데 무슨 모임이냐고 묻자 친구의 아내는 손주가 계속 병치레를 해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가 참석해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지금 그의 손주는 잘 자라고 있다. 전직 국가대표 운동선수였던 라시드는 지역 고위 인사들과 매우 가까워서, 내가 어려울 때 여러모로 도움을 주곤 한다. 그의 아내는 빼어난 요리 솜씨로 우리 집의 여러 행사에 도움을 주고 과거 무슬림 여성으로 겪은 여러 아픔에 대해 아내에게 이야기를 한다.


1) 성지순례를 마친 무슬림에게 붙이는 존칭 

2) 이슬람의 종교 지도자



✣ 친구와의 이별


어느 날 한낮의 무더위가 가라앉을 무렵 연락이 왔다. 병상에 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그는 나와 같은 나이에 생일도 일주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1년 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는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시신 앞에서 문상하지 못하게 했었다. 친구의 부고를 듣고 제일 먼저 집으로 달려가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그의 영구차를 맞이했다. 장례와 그 후 몇 번의 추모 행사에 나는 수백 명의 무슬림들과 함께 밤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다. 이제 이 도시의 중년, 노년층 많은 사람들이 은퇴한, 기독교인이자 외국인인 나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나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사역의 시작 


이 도시에 오기 전 10여 년간 S시에서 B족 사역을 했다. 3,400만 명의 인구 중 기독교인이 겨우 2만 명뿐이었다. S시에 살던 대부분의 서양 친구들과 우리 가족은 B종족 무슬림들을 위해 다양한 사역을 펼쳤다. 서양 친구들과 현지 지도자들에게서 무슬림에 대해 더 깊이 배운 나는 그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무슬림들과 친구가 되어 살았다. 서툴지만 그들의 종족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마을과 학교에서 그들과 어울리며 함께 먹고 마시고 소규모 사업도 하고 농사도 지었다. 다행히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자연스럽게 회심자가 생겨나고 마을에 잘 정착 할 수 있었다. 



✣ 새로운 사역지 


S시에서 제법 큰 열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동역자가 이제 자기가 떠날 때라며 대책 없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함께 일하던 우리 모두는 이제 떠날 때란 것을 짐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결국 함께 일하던 여러 나라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모두 떠났다. 대부분 여전히 다양한 곳에서 무슬림들이나 선교사들을 섬기며 일하고 있다. 나 역시 다른 섬으로 옮겨갔다. 가끔 함께하던 친구들이 그립다. 이제 S시에서 함께 사역하던 현지인 동료들이 지도자가 되어 우리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나는 그들이 보고 싶지만 출장길에도 의도적으로 그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있다. 



✣ 현지 생활의 도전 


살고 있는 도시의 친구들은 내가 무슬림이 되면 더 좋겠다고 말한다. 금식 기간에 그들 앞에서 물도 마시지 않는 나에게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준다. 자기들은 기쁨으로 금식을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나를 위한 배려이다. 가끔 친구들은 “너는 말은 할 줄 알면서 들을 줄은 모른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그건 내가 쓰는 표준어와 그들의 종족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통해 예수님의 공생 사역 이전 삶을 묵상하게 된다. 이 도시에 10년 가까이 살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친구들에게 늘 묻고 도움 받아야 그들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다. 언제 이 땅을 떠날지 모른다. 그때까지 그들에게서 받는 도움과 배움은 계속될 것이다.



✣ 마을에서의 삶 


도시에서 두 시간 남짓 해적들이 타고 다닐 만한 작은 스피드 보트를 타고 마을에 들어간다. 만명이 넘는 주민들은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이주해 온 기독교인들끼리 동네 안에서 분리되어 살고 있다. 그들은 외부 기독교인들의 도움으로 무슬림들보다 혜택을 받고 있다. 내가 도착하면 마을 젊은이들이 노골적으로 나를 경계한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에게 교회까지 오토바이를 태워 달라 부탁한다. 저녁에는 촌장과 무슬림 지도자 집에 가서 음식을 얻어먹고 차도 마시며 어울린다. 어느 날 무슬림 지도자와 촌장이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석했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목사에게 그건 당연한 결과라며 장벽을 허물라고 계속 조언한다. 이제 서로 중요한 행사에 왕래하고, 종교를 떠나 마을 공동 프로젝트도 함께하고 있다.



✣ 도시에 있는 현지교회 


친구들의 권면(?)을 받아들여 도시 안의 교회에 나갔다. 첫날 목사님은 선교사냐고 묻는다. 상황을 설명하니 단번에 알아듣고 도움을 준다. S시의 친구 목사가 이 나라의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기에 나는 그의 이름을 지역 리더급 목회자들에게 적절히 사용한다. 출석 교회 목사의 도움으로 도시 안의 몇몇 목사들과 책도 읽고 교제를 한다. 나는 주로 자리를 만들고 현지 목사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도시에 있는 현지 교회의 친구들은 나에게 무슬림들을 멀리하고 자기들만 섬기라는 말은 자주 한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주님이 모든 민족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이 말은 기독교, 무슬림, 타 종교 친구들 모두에게 한다.




✣ 남은 시간 


이곳에 얼마나 오랜 기간 살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종교, 인종,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먹고 마시고 어울릴 것이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복음은 막힌 담을 허물고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을 나는 믿는다. 우리는 이 땅을 떠날 때까지 한 사람의 예수 믿는 자가 되어 모든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일하며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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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샤론 파트너 기독교인들과 무슬림이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돕는 “무슬림의 친구” 프로젝트를 실천하며 20년간 인도네시아의 무슬림과 친구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는 지역 테니스 협회와 관계를 맺어 무슬림 가운데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면서 새로운 사역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불어 살기” 마이크로 파이낸싱을 통해 지역 개발과 평화 공존을 꿈꾸며 사역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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