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무르익었으니... 그가 여기 계시다!
비조이 코쉬, 국제 인터서브 대표
얼마 전에 동네 친구가 내게 물었다. “왜 성탄절이 되면 예수가 ‘탄생했다’(Jesus was born)가 아니라 ’탄생하다’(Jesus is born)라고 말하는 걸까?” 그냥 문법적인 문제일까, 아니면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예수가 실재하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드러나야 할 현실은 무엇일까?
성탄절은 충만한 하나님의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 Kairos’의 시간과 시계나 달력에 쓰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Chronos’의 시간이 만나는 중요한 시기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이 만나면, 역사적인 특정 시점에 일어난 일이 현재 시제로 지금 펼쳐진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우리가 가진 논리적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카이로스는 예정되어 있고, ‘오직 하늘 아버지만 아시며’, 성령이 알려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예측하려던 학자들은 전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성탄절은 단순히 수천 년 전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다. 성탄절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탄생을 자기 마음과 생각의 중심에 놓았을 때 일어나는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일상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탄절은 우리의 일상에서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일상은 ‘그가 여기 계신’ 순간, 즉 사랑·기쁨·희망·평화 등 성탄의 모든 가치를 삶으로 구현한 그 순간에 우리가 예수의 탄생을 경험하는 장소이다. 우리 자신과 이 세상의 깨어짐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든 상황과 환경, 고난과 고통, 질병과 갈등, 감정과 사건을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아래로 가져와야 한다. "오늘 이 도시(마을)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주가 여기 계시다, 이것이 곧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다. 그가 구원하시고 속량하실 것이다. 이것이 아랍과 아시아권 사람들이 들어야 할 복음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가정과 공동체에서 그분의 존재를 실제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삶에서 ‘그가 여기 계신’ 순간들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순간에 아랍과 아시아권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주가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카이로스와 우리의 크로노스가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라. 어떤 상황에 있든지, 어떤 관계와 갈등을 겪든지 때가 완전히 이르면 그가 반드시 여기 계실 것이다. 아시아와 아랍 사람들이 우리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가? 그 비결은 아마도 성탄절 이야기가 현재 우리의 일상에서 현실이 되어, 참된 주님이신 구세주를 강력하게 증언하는 데 있을 것이다.
여러분 모두에게 복된 성탄절을 기원합니다!
번역: 박지연 프렌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