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 선교사 (키르기스스탄)
한국 본부에서 사역 이야기를 보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평소에 가끔 내게 주시는 잔잔한 감동을 기록한다. 하지만, 이 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때 그 감동이 그대로 살아날까? 이 글이 나를 포장해서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면 어떡하지? 아니면 남들에게 나누려고 하면 저절로 축소해서 말하는 나의 습관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축소하면 어쩌지? 그러나 이것은 나의 사역 보고도 아니고, 디브리핑debriefing을 하면서 나를 진단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기에, 이곳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잔잔한 감동을 공유한다.
지난 2015년, 이 땅에 첫발을 디딘 후에 처음 한 것이 아파트 개조였다. 개조한 이 집은 기도의 집으로 변했다. 모든 교회의 교인들과 이 지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열려 있다. 기도의 집에서는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하루에 두 시간씩 예배와 말씀 묵상, 중보 기도를 하고 있다. 내가 적었던 글들을 돌아보면서 기도의 집 자매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글을 나누고 싶다.
2023년 11월 23일 (목)
“오늘 기도회에는 8명이 모여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기도회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가득히,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 위에 임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임하신 성령님과 교통하는 것이 보입니다. 아마 기도자 중에서 성령님의 임재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저일 듯싶습니다. 한글 찬양과 영어 찬양을 하면, 찬양의 가사로 선포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그 임재 가운데 잠겨 들지만, 키르기스어로 찬양하다보면 눈을 0.5초만 더 길게 깜빡해도 가사를 놓쳐 버립니다. 윗 줄을 부르고 있었는지 아랫 줄을 부르고 있었는지 갈팡질팡합니다. 키릴 문자의 ‘ㅣ’ 자와 ‘p’ 자는 눈을 부릅뜨고 봐도 잘 안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찬양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유롭게 주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복인지 모릅니다. 이분들이 깊이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감사합니다.
찬양과 예배의 한 시간이 끝날 때, 주님의 기도로 끝을 맺습니다. 키르기스어로 한번, 아람어로 한번. 그런데 오늘은 도저히 끝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심으로 도저히 그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피아노로 긴 간주를 하고, 키르기스어로 한번 더 찬양을 하였습니다. 그 성령님의 임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무나 달콤해서 내 목소리조차도 정말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둘러앉았습니다. 다들 나를 보면서 기다리는데, 나는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리드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각자 위에 강하게 임재하신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그것을 듣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부터, 기도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 놓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더욱 깊고 민감하고 높아야 될 것 같은 모든 부담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깨뜨립니다. 내 온몸의 힘을 빼고 성령님께 나를 맡깁니다.”
나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지역에 있는 믿는 형제자매들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들이 매일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과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몇몇 사람들에게 슬며시 나의 소원을 나눠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 키르기스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듣기는 하지만 읽지는 않습니다.”, “말씀 묵상은 한국 크리스천들이 하는 것이지, 우리 키르기스의 문화와는 다릅니다.” 큰 돌덩이가 내 가슴을 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안식년 동안에 미국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이 기도 제목을 나누고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키르기스로 돌아온 후 기도의 집에 오는 자매들에게 간곡히 이야기를 해보았다.
“나한테 정말 원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들어 주실래요? 그것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너무나도 흔쾌히, “합시다. 유니스 에제가 좋다고 하는 것은 정말 좋을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말씀 묵상이 시작되었다. 요한복음의 묵상 스케줄을 만들어서 시작한 지 4달 되었고, 이제는 요한복음을 끝내고 창세기를 묵상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열리는 기도의 집에서 첫 시간은 예전처럼 예배와 임재의 시간, 각자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두 번째 시간에는 매일 집에서 묵상해 온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미국에서는 일주일에 하루 모여서 묵상 나눔을 하는데, 여기에서는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일주일에 4일 묵상 나눔을 한다.
E 자매: 매일 분량의 말씀을 필사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것을 계속 묵상한다. 그리고 매일 교회에 와서 나눔을 하고 다른 사람의 나눔을 듣는다. 그는 자기 노트에 남들에게서 듣는 깨달음을 적는다. 그리고 그것을 또 묵상한다. 요한복음을 묵상하면서 끊임없이 “오, 주님, 너무 좋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우십니다. 너무나 사랑합니다.” 는 고백을 한다. 새롭게 알게 된 예수님의 모습에 너무 감사하고 좋아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권유하여 함께 묵상과 예배를 하고, 아름다운 창조에 감격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한다. 한쪽 턱의 통증으로 1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때도, 링거로 매일을 버티며 말씀 필사와 묵상을 놓지 않는다.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G 자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귀해서, 그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며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는 주위에 있는 다른 자매에게 말씀 묵상을 권하여 그와 따로 나눔을 하고 있다.
A 자매: 그녀의 얼굴은 온통 주름으로 가득하고, 계속해서 하품을 한다. 숨을 몰아쉬고 하품을 계속해서 무슨 병이 있나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하품이 줄어들고, 숨을 몰아쉬던 것이 없어졌다. 오, 할렐루야! 사람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하고, 두려워서 계속 피하고 손을 바들바들 떨던 것이 없어졌다. 아, 치유되었구나. 아버지가 이 딸을 치료하셨구나. 창세기를 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맛있고 좋아서, 아주 힘이 난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 묵상을 나누고 전도하고 권유하며 지낸다.
V 자매: A 자매가 우리 모임에 데리고 온 친구인데, 모임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멀리 산속 마을로 이사를 했다. 우리는 그 자매가 이사한 집으로 함께 심방을 갔다. 교회에서 약 한 시간가량 떨어진 정말 깊은 산속의 마을이다. 거기에서 이 자매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주일에도 혼자서 예배할 수 밖에 없는 이 자매에게 나는 간곡하게 당부하였다. 매일 묵상을 하라고. 그리고 A 자매와 매일 기도로 나눔을 가지라고. 우리는 이 자매의 뒷산으로 나가서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충만한 기쁨을 나누고 왔다.
가장 낮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작은 자들이 기도의 집에 온다. 와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느낀다. 그 아버지 앞에 자신을 열어놓고 기도한다.
20~30년 전에는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전도하던 군사들이었는데, 이제는 나이 들고 힘이 없는 노인들이 되었다. 가진 것도 없다. 오직 사랑하는 주님만 붙잡고 있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아파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는 이 곳, 오직 기도로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이 곳, 우리 부부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함께 있음으로써, 함께 기도함으로써, 함께 말씀을 읽음으로써. 우리의 아버지는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반드시 그들을 붙잡으시리라. 끝까지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들을 품에 안으시리라. 그리고 나이는 들었지만, 그 마음의 소원대로 다시 한번 영적 군사들이 되어 그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내게 하시리라!
함께 기도해주세요. - 기도의 집에 오는 자매님들이 다 아픈 곳이 많습니다. 병명도 모르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기도로만 매달리고 있는 자매들의 아픔이 온전히 치유되게 하소서.
- 알라를 믿고 히잡을 쓰라는 남편의 박해를 받고 있는 배가마이 자매가 믿음을 잘 지켜낼 수 있도록 지켜주소서.
- 교회의 여름 수양회를 마침으로써 지난 8개월 동안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은 사역에도 주의 은혜로 잘 감당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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